K패션이 동남아로 몰려가고 있다. 패션비즈가 10월 12일 월요기획으로 다룬 테스트 끝, 7억 인구 잡아라: K-패션 동남아 진출 러시에 따르면, 진출 주체는 LF·F&F 같은 대기업에서 신진·이머징 브랜드로, 카테고리는 여성복·잡화·애슬레저로 넓어졌다. 기사가 짚는 대상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베트남이다.
국내 의류 시장의 성장세는 둔화됐고 일본과 중국은 안정기에 들어섰다는 것이 기사가 제시한 배경이다. 그런데 이번 흐름에서 흥미로운 건 어디로 가느냐보다 어떻게 가느냐다. 브랜드가 직접 매장을 내던 과거와 달리, 현지 유통 파트너의 판매망을 빌리고 팝업으로 먼저 반응을 본 뒤 정규 매장으로 넘어가는 순서가 거의 같은 모양으로 반복된다. 이 글은 기사에 나온 사례를 이 공식 위에 놓고, 아직 비어 있는 부분이 어디인지 짚는다.
수요는 충분하다 — 해외한류실태조사가 보여주는 것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3월 30일 발표한 '2026 해외한류실태조사'(2025년 기준)는 해외 30개 국가·지역의 15~59세 현지인 27,4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이다. 조사 기간은 2025년 11월 13일부터 12월 12일까지다. 이 조사에서 동남아 진출의 수요 기반을 가늠할 수 있는 수치는 다음과 같다.
| 항목 | 수치 | 비고 |
|---|
| 한국 문화콘텐츠 호감도(전체) | 69.7% | 전년 70.3%에서 소폭 하락 |
| 호감도 — 필리핀 | 87.0% | 동남아 |
| 호감도 — 인도네시아 | 82.7% | 동남아 |
| 호감도 — 태국 | 79.4% | 동남아 |
| 한류가 한국 제품·서비스 구매에 영향을 준다는 응답 | 64.8% | 3년 연속 증가 |
| 분야별 월평균 지출액 — 패션 | 33.9달러 | 전체 분야 중 최고, 뷰티는 29.7달러 |
두 가지는 짚어야 한다. 호감도는 패션이 아니라 한국 문화콘텐츠 전반에 대한 값이다. 그리고 패션 지출액 33.9달러는 30개 국가·지역 전체 기준이라 동남아만의 숫자가 아니다. 진흥원 보도자료에는 패션 경험률이나 동남아 국가별 패션 수치가 실려 있지 않았고, 원문 보고서는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 또한 이 조사는 대상국, 표본, 문항이 해마다 달라지므로 전년 수치와의 단순 비교는 조심해야 한다.
패션만 따로 본 국가별 수치는 한 해 앞선 '2025 해외한류실태조사'(2024년 기준, 28개국)에서 확인된다. 해당 조사를 보도한 TIN뉴스에 따르면 K-패션 경험률은 28개국 평균 57.4%였고, 태국 85.4%, 필리핀 80.4%, 베트남 79.2%, 인도네시아 78.5%로 동남아 국가들이 상위권이었다. 같은 조사에서 K-패션에 대한 호감을 가로막는 요인으로는 구매의 어려움(29.9%), 사이즈 다양성 부족(25.1%), 품질 대비 높은 가격(22.0%)이 꼽혔다. 최근 1년 구매 경로는 자국 사이트·앱(52.6%), 글로벌 사이트·앱(50.5%), 자국 오프라인 매장(41.0%) 순이었다.
수요가 충분하다는 점은 이 숫자들로 확인되지만, 병목은 수요가 아니라 접근성과 맞춤이라는 점도 함께 읽힌다. 호감은 높은데 구매가 어렵고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는 응답이 적지 않다는 것은, 뒤에서 보는 현지 유통 파트너 활용과 상품 현지화가 왜 공통 공식이 됐는지를 설명하는 단서로 볼 수 있다. 다만 이는 한 해 앞선 조사와 신진 브랜드 사례를 겹쳐 놓은 해석이며, 이 조사가 브랜드들의 진출 결정을 직접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사례에서 반복되는 세 가지 패턴
기사에 등장한 브랜드들의 진출 경로를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다. 성과 수치는 기사에 실린 브랜드 측 설명이며, 별도로 검증된 값은 아니다.
| 브랜드 | 진출 경로 | 기사에 나온 초기 지표 |
|---|
| 마뗑킴 | 센트럴그룹과 2030년까지 5년 계약, 방콕 숍인숍 및 플래그십 | 매출 목표 약 600억원, 플래그십 첫날 300여 명 방문 |
| 스튜디오톰보이·보브 | 싱가포르 파라곤 팝업 후 메트로백화점 정식 입점 | 팝업 11일간 1만 명 이상 방문, 오픈 약 2주 만에 목표 초과 |
| 글로니 | 방콕 엠스피어 팝업 | 3~7월 현지 리테일 기준 약 6억원 |
| 칼린 | 시암피왓과 파트너십, 시암 디스커버리·아이콘시암 출점 | 오픈 당일 초도 물량 완판 |
| 스탠드오일 | 인도네시아는 크림이 총판, 자카르타·수라바야 매장 | 2차 팝업 매출이 1차보다 50% 이상 증가 |
| 마르헨제이 | 인도네시아는 직진출로 전환, 나머지 국가는 현지 유통업체 협력 | 온라인 선테스트에서 구매전환율·재구매율 긍정적 |
첫째는 파트너의 판매망을 빌린다는 점이다. 센트럴그룹, 메트로백화점(싱가포르 2개점, 인도네시아 17개점), 시암피왓 같은 현지 유통사나 크림·롯데백화점 넥스트랩 같은 국내 유통기업의 인프라를 활용하면서, 정보도 초기 비용도 부족했던 중소·신진 브랜드의 문턱이 낮아졌다는 것이 기사의 설명이다.
둘째는 팝업이 사실상 입점 심사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스튜디오톰보이·보브는 지난해 9월 파라곤 팝업이 끝난 뒤 메트로백화점으로부터 정식 입점을 제안받았다고 한다. 스탠드오일은 팝업을 두 번 열어 두 번째 팝업 매출이 첫 번째보다 50% 넘게 늘어난 것을 확인한 뒤 플래그십으로 넘어갔다. 투자 규모가 큰 상설 매장 전에 반응을 검증하는 장치가 하나의 관행이 된 셈이다.
셋째는 상품을 현지에 맞춘다는 점이다. 고온다습한 기후에 맞춰 칼린은 가죽 대신 패브릭·퀼팅 소재 비중을 늘렸고, 스튜디오톰보이·보브는 리넨 블렌드와 가벼운 니트를 내세웠다. 선발 대기업들도 국가·매장 한정 익스클루시브 제품으로 한정판 전략을 고도화하는 중이라고 한다.
눈여겨볼 대목 — 한국 매장이 해외 진출의 실험실이 됐다
내가 이 기사에서 가장 비중 있게 읽은 대목은 '역유입'이다. 동남아에서 브랜드를 접한 소비자가 한국을 방문해 성수, 한남, 홍대, 도산의 플래그십을 찾고, 그 결과 국내 매장에서 태국·인도네시아 관광객의 매출 비중이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들의 구매 데이터가 해외 사업 방향과 신상품 R&D의 근거로 쓰이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기사는 짚는다.
사례를 보면 이 순환은 반대 방향으로도 작동한다. 타낫은 한남 플래그십에서 동남아 관광객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가능성을 확인한 뒤 8월 방콕 센트럴월드에서 첫 팝업을 열었다. 칼린은 홍대 플래그십 리뉴얼 직후 현지 셀럽이 SNS에 칼린백을 올린 것이 태국 관광객 방문 증가로 이어졌다고 한다. 적어도 이 사례들에서는 해외 진출의 출발점이 현지 시장조사가 아니라 서울 매장의 외국인 구매 데이터였다.
이 지점은 면세·인바운드 리테일을 보는 관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서울의 플래그십은 이제 관광객에게 상품을 파는 곳이면서 동시에 해외 수요를 측정하는 센서 역할을 한다. 다만 기사에는 이 매출 비중 증가를 보여주는 구체적 수치가 없다. 비중이 얼마나 커졌는지, 팝업과 정규 매장 중 어느 쪽 기여가 큰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규모는 아직 작다 — 숫자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기사가 이 흐름을 '테스트 끝'이라고 부르지만, 공개된 숫자를 놓고 보면 아직 시험 단계에 가깝다. 구체적 매출 수치가 나온 사례는 글로니(3~7월 현지 리테일 기준 약 6억원)와 마뗑킴의 5년 약 600억원 목표 정도다. 마뗑킴의 목표는 단순 산술로 연평균 약 120억원인데, 목표치이고 계약 기간 전체에 걸친 값이다.
비교를 위해 앞서 분석한 삼성물산 패션부문 상반기 실적을 보면 상반기 수출이 37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0.3%였다. 다만 이 수출액은 회사 전체 수출 매출이고 글로니의 값은 팝업 현지 리테일 판매액이라 기준이 다르므로, 규모 감각을 잡는 참고용으로만 보는 편이 맞다. 그래도 방향은 분명하다. 대기업의 수출 비중이 0.3%에 머무는 사이, 신진 브랜드들은 파트너의 판매망을 빌려 빠르게 해외 매장을 열고 있다.
여기서 하나 더 짚을 점이 있다. 칼린은 태국 외 국가에서는 독점 판매권을 현지 업체에 넘기는 방식을 쓴다. 파트너 중심 모델은 투자 부담을 줄이는 대신 마진을 나눠야 하고 브랜드 통제력도 일부 내주게 된다. 마르헨제이가 인도네시아에서 기존 파트너십을 끝내고 직진출로 바꾼 것도 이 균형을 다시 잡으려는 시도로 읽힌다. 파트너 모델이 지속 가능한지는 팝업에서 상설 매장으로 넘어간 뒤의 수익성에서 갈린다.
비즈니스 임팩트
실무적으로 보자면 이번 흐름이 시사하는 바는 두 가지다. 먼저 해외 진출의 진입 비용이 낮아지면서 K패션 시장의 경쟁이 국내에서 해외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신진 브랜드가 대기업과 같은 현지 파트너를 두고 경쟁하게 되면서, 파트너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늘고 브랜드 입장에서는 입점 조건 협상력이 달라질 수 있다. 다음으로 국내 플래그십의 외국인 고객 데이터가 해외 전략의 선행지표가 되면서, 인바운드 관광 수요가 패션 브랜드의 해외 진출 순서를 정하는 변수로 올라왔다.
다만 기사에는 기업 관계자의 직접 인용이 없고 성과 수치 대부분이 오픈 초기의 방문자 수나 완판 사례에 머문다. 지속적인 매출과 이익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흐름은 분명하되 성과는 아직 입증되지 않은 단계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RIT's Insights
동남아 진출 공식이 팝업과 파트너로 표준화될수록 차별화는 입점 여부가 아니라 팝업 이후 재구매에서 갈릴 것이다. 지금 공개된 지표는 방문자 수와 초도 완판처럼 호기심 소비로도 만들어지는 숫자라서, 두 번째 시즌에도 같은 반응이 나오는지가 진짜 시험대다. 내가 확인하고 싶은 건 서울 플래그십의 동남아 관광객 매출 비중이 실제로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파트너 모델에서 빠져나와 직진출로 돌아서는 브랜드가 마르헨제이 말고 더 나오는지다.
출처
- [월요기획] 테스트 끝, 7억 인구 잡아라: K-패션 동남아 진출 러시 (패션비즈, 2026-10-12 — 진출 배경·방식, 브랜드별 사례, 역유입 구조)
- 마뗑킴, 태국 600억 규모 매출 계약 체결 (데일리안 — 센트럴그룹 5년 계약, 2030년까지 약 600억원 매출 목표)
- 삼성물산 패션, 자체브랜드 강화·해외브랜드 확대로 '실적 반등' (CEO스코어데일리, 2026-10-12 — 삼성물산 패션 상반기 수출 37억원, 매출 대비 비중)
- 2026 해외한류실태조사 보도자료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 조사 개요: 30개 국가·지역, 27,400명, 2025.11.13~12.12, 패션 월평균 지출 33.9달러)
- 한류 경험자 10명 중 7명 '한국 호감'…BTS, 영향력 있는 스타 1위 (뉴시스, 2026-03-30 — 호감도 전체 69.7%와 필리핀·인도네시아·태국 수치, 구매 영향 64.8%)
- 10명 중 6명, "K-패션 경험했다" (TIN뉴스, 2025-04-16 — 2025 해외한류실태조사(2024년 기준) 패션 경험률, 호감 저해 요인, 구매 경로)
- 마뗑킴의 연평균 약 120억원은 5년 600억원 목표를 단순히 5로 나눈 산술값이며, 회사가 연도별로 제시한 목표가 아니다. 사례별 초기 지표는 패션비즈 기사에 실린 브랜드 측 설명이며 독립적으로 검증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