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율 3배 차이가 말해주는 것 — 월마트의 챗GPT 실험과 이마트의 다음 스텝
Overview
월마트가 챗GPT 안에서 바로 결제까지 끝내는 "즉시결제" 기능을 실험했지만, 전환율은 자사 웹사이트로 유도했을 때보다 3배나 낮았다. 원인은 추천 정확도가 아니라 장바구니·멤버십·배송이 끊어진 결제 구조였다. 같은 시기 자체 에이전트 스파키는 거래액이 150% 늘며 정반대의 성과를 냈고, 신세계그룹도 오픈AI에서 리플렉션 AI로 파트너를 바꾸며 비슷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챗GPT 안에서 상품을 추천받고,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제까지 끝낸다. 2025년 10월 월마트와 오픈AI가 손잡고 선보인 '즉시결제(Instant Checkout)'는 이 그림을 현실로 만든 첫 사례 중 하나였다. 그런데 몇 달 뒤 월마트가 직접 공개한 숫자는 예상 밖이었다. 챗GPT 안에서 바로 결제한 상품의 전환율이, 같은 상품을 추천받은 뒤 월마트 웹사이트로 이동해 결제했을 때보다 3배나 낮았다. 클릭 한 번 줄인 결제가 오히려 덜 팔린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같은 시기 월마트의 자체 에이전트는 왜 정반대의 성과를 냈는지를 들여다보면 에이전트 커머스 경쟁의 진짜 승부처가 보인다. 신세계그룹이 이마트를 앞세워 벌이고 있는 실험도 이 승부처를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
월마트는 무엇을 하고 있나
월마트는 2025년 여름부터 자사 AI 전략을 네 개의 '슈퍼 에이전트' 체계로 정리했다. 고객용 쇼핑 에이전트 '스파키(Sparky)', 직원 업무를 돕는 '어소시에이트 에이전트(Associate Agent)', 입점·주문·광고를 관리하는 협력사·판매자용 '마티(Marty)', 사내 개발자의 개발·테스트·배포를 지원하는 '디벨로퍼 에이전트(Developer Agent)'다. 부서마다 개별 챗봇을 난립시키는 대신, 사용자 유형별 네 개의 진입점 아래 여러 전문 에이전트를 오케스트레이션하는 구조를 택했다.

이 중 가장 앞서 있는 건 스파키다. 2025년 6월 월마트 앱에 도입된 스파키는 상품 검색, 리뷰 요약, 상황별 추천을 제공하며, 이후 매장 내 재구매, 식단 계획, 스페인어 지원까지 기능을 넓혔다. 월마트는 여기에 범용 LLM뿐 아니라 자사 유통 데이터로 학습한 리테일 특화 모델을 함께 쓴다고 밝혔다 — 고객 접점을 장악하려는 경쟁에서 데이터 자산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의도다.
핵심 인사이트 ① — 낮은 전환율의 진짜 원인은 '추천 불신'이 아니었다
월마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난해 10월 14일 오픈AI와의 협업을 공식 발표했다. 챗GPT에서 상품을 추천받은 뒤 별도 쇼핑몰로 옮길 필요 없이 그 자리에서 결제까지 끝내는 방식이었다. 11월부터 약 20만 개 상품을 대상으로 일부 이용자에게 서비스를 시작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월마트의 AI 가속·제품·디자인 책임을 맡고 있는 대니얼 댕커(Daniel Danker)는 챗GPT 안에서 바로 결제한 상품의 전환율이 웹사이트로 유도했을 때의 3분의 1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이 결과만 보면 "AI 추천을 소비자가 신뢰하지 못했다"는 해석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월마트가 실제로 지목한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즉시결제는 기본적으로 단품 구매용으로 설계돼 있었다. 고객이 챗GPT에서 상품 하나를 결제할 때마다 별도 주문·배송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고, 이미 월마트 장바구니에 담아둔 다른 상품과 합쳐 한 번에 결제하기도 어려웠다. 월마트+ 배송 혜택, 최소 주문금액, 묶음배송 조건, 로열티 포인트 같은 장치도 이 결제 경로 안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여러 생필품을 한 번에 사고 배송을 묶어 받으려는 고객에게, "채팅 안에서 한 번에 결제"는 편리함이 아니라 오히려 불편함이었던 셈이다. 결국 낮은 전환율의 실체는 AI 모델의 추천 품질 문제가 아니라, 기존 쇼핑 여정과 단절된 결제 워크플로 문제였다.
핵심 인사이트 ② — 오픈AI도 같은 결론에 도달해 전략을 바꿨다
이 문제를 인정한 건 월마트만이 아니었다. 오픈AI는 2026년 3월, 즉시결제 모델이 "지향하는 만큼의 유연성을 제공하지 못했다"고 스스로 밝히며 전략을 틀었다. 결제를 챗GPT 안에서 완결시키는 대신, 챗GPT는 상품을 발견하고 노출하는 역할에 집중하고, 실제 결제는 각 리테일러가 자신의 시스템에서 통제하도록 '에이전틱 커머스 프로토콜(Agentic Commerce Protocol)'을 확장했다. 타깃, 세포라, 노드스트롬, 로우스, 베스트바이, 홈디포, 웨이페어 등 주요 리테일러가 이 방식으로 옮겨갔다.
월마트도 같은 시점에 대응책을 내놨다. 챗GPT 안에 자체 앱 형태로 스파키를 심어, 고객이 챗GPT에서 상품을 발견하더라도 로그인·장바구니 동기화·결제·멤버십 혜택은 월마트가 통제하는 환경에서 처리되도록 바꾼 것이다. 월마트 측은 "시작점이 어디든 고객은 동일한 월마트의 구색과 가치, 배송 속도를 그대로 경험한다"고 설명했다. 외부 플랫폼에서 발을 빼는 게 아니라, 외부 플랫폼 안에 자사의 거래 환경을 그대로 옮겨 넣는 방향이다.
핵심 인사이트 ③ — 같은 기간, 자체 에이전트는 정반대로 급성장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비가 나온다. 즉시결제가 저조한 성과를 내던 바로 그 시기, 월마트가 스스로 통제하는 스파키는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2026회계연도 1분기(4월 말 마감) 기준, 스파키를 거친 거래액(GMV)은 직전 분기 대비 150% 늘었고, 스파키를 통한 구매 건수는 4배 이상 증가했다. 주간활성이용자(WAU)는 분기 만에 100% 넘게 늘었고, 스파키 이용 고객의 평균 주문금액(AOV)은 비이용 고객보다 약 35% 높았다. 월마트 앱 이용자의 절반가량이 이미 스파키를 써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AI 에이전트인데 왜 결과가 이렇게 갈렸을까. 챗GPT 즉시결제와 스파키의 결정적 차이는 모델 성능이 아니라 '누가 거래 워크플로를 쥐고 있느냐'였다. 스파키는 월마트 계정, 기존 장바구니, 멤버십 혜택, 배송 옵션, 재고 데이터에 처음부터 완전히 연결돼 있다. 반면 즉시결제는 이 모든 연결이 빠진 채 결제 버튼 하나만 챗GPT 안으로 옮겨온 형태였다. 결국 에이전트가 얼마나 똑똑한지보다, 그 에이전트가 실제 주문·결제·배송 시스템과 얼마나 매끄럽게 연결돼 있는지가 성과를 갈랐다.
핵심 인사이트 ④ — 구글과의 제휴도 같은 논리를 반복하고 있다
월마트는 2026년 1월 11일 구글과도 손잡았다. 제미나이(Gemini) 이용자가 대화 중 월마트·샘스클럽 상품을 발견하고, 구글의 신규 프로토콜인 '유니버설 커머스 프로토콜(Universal Commerce Protocol)'을 통해 챗봇 안에서 결제까지 완료할 수 있도록 하는 제휴다. 월마트·제미나이 계정을 연동하면 온·오프라인 구매 이력을 기반으로 한 맞춤 추천을 받을 수 있고, 제미나이에서 찾은 상품을 기존 월마트 장바구니와 합칠 수도 있다.
주목할 점은 이 구조가 챗GPT 실패의 교훈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발견은 외부 플랫폼에서, 계정·장바구니·결제·배송은 월마트 시스템에서'라는 원칙이 오픈AI와의 재설계, 구글과의 신규 제휴 모두에 동일하게 적용됐다. 즉시결제 실패가 일회성 시행착오가 아니라, 업계 전체가 수렴하고 있는 표준적인 교훈이라는 뜻이다.
비즈니스 임팩트 — 에이전트는 고객 접점을 넘어 수익모델이 되고 있다
에이전트 전략의 성과는 쇼핑 에이전트에만 머물지 않는다. 협력사·광고주용 에이전트 마티는 2026년 1월부터 월마트 커넥트(Walmart Connect) 안에서 스폰서드 서치 캠페인을 대화형으로 만들고 최적화해주는 광고 비서 기능을 베타로 운영 중이며, 연내 전체 광고주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용자 질의의 97%가 서로 다른 내용일 만큼 광고주마다 개별화된 상담이 이뤄지고 있다. 같은 분기 월마트의 광고 매출은 전년 대비 37% 성장했고, 리테일미디어 사업 전체는 33% 늘어 회사 전체 매출 성장률의 6배에 달했다.
즉, 월마트에게 에이전트는 단순히 고객 경험을 개선하는 장치가 아니라 고객(스파키)과 광고주·협력사(마티) 양쪽에서 동시에 수익을 만들어내는 이중 엔진이 되고 있다. 에이전트 커머스 경쟁에서 "고객 접점을 누가 장악하느냐"는 질문은, 실제로는 "누가 거래·결제·광고 시스템까지 통제하며 그 접점을 수익으로 전환하느냐"는 질문에 더 가깝다.
국내 사례 — 이마트는 지금 어디쯤 있나
이 흐름을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신세계그룹도 이마트를 앞세워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고, 최근 몇 달 사이 그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다만 "이마트도 월마트처럼 고객용 AI 쇼핑 에이전트를 이미 상용화했다"고 말하면 과장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을 그대로 나열하면, 이마트는 화려한 고객용 에이전트보다 눈에 덜 띄는 업무용 AI를 먼저 현장에 심고, 고객용 쇼핑 에이전트는 계획과 파트너 재편을 거듭하는 단계에 있다.
계획: 검색부터 결제까지 완결되는 AI 커머스, 그리고 두 번 바뀐 파트너
신세계그룹은 2026년 4월 6일 오픈AI와 AI 커머스 사업협력 MOU를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이마트를 시작으로, 고객이 대화창에 "내일 저녁 가족 식사 메뉴를 준비해 줘"라고 요청하면 AI가 필요한 상품을 구성하고 구매 이력과 취향을 반영해 장바구니를 채운 뒤 결제와 배송 예약까지 끝내는 완결형 AI 커머스를 2027년까지 구현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월마트 스파키가 지향하는 식단 계획·상품 구성·구매 실행 흐름과 상당히 닮은 그림이다.
그런데 이 발표 11일 만인 4월 17일, 신세계그룹은 오픈AI와의 협업 논의를 중단하고 미국 리플렉션 AI(Reflection AI)와의 협력에 역량을 집중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국내에 250MW급 AI 데이터센터를 짓는 대형 프로젝트와 함께, 상품 소싱·발주·가격 책정·물류·재고관리·고객관리 6개 영역에 AI를 적용하는 쪽으로 전략을 재편한 것이다. 이마트는 이 프로젝트에서 그룹 내 선도 역할을 맡았지만, 고객용 쇼핑 에이전트의 구체적 출시 시점이나 최종 기술 파트너는 아직 확정 발표되지 않았다. "AI 커머스로 간다"는 전략 방향은 유지되고 있지만, 구현 방식과 파트너는 두 달도 안 되는 사이 한 번 바뀐 셈이다.
이미 가동 중인 것: 화려하지 않지만 실제로 도는 현장 AI
고객용 쇼핑 에이전트보다 먼저 자리 잡은 건 오히려 눈에 덜 띄는 업무용 AI다. 이마트 바이어들은 마이크로소프트 코파일럿을 이용해 스스로 업무용 에이전트를 만들고 있는데, 2025년 코파일럿 에이전톤에서는 이마트 바이어팀이 만든 '입점 미납 내역 알림 에이전트'가 우승을 차지했다. 개발자가 아니라 현업 바이어가 직접 업무 데이터를 연결해 에이전트를 설계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신선식품 시세 예측과 상권 분석 같은 반복 업무에도 이미 AI 에이전트가 적용돼 있고, 앞으로 식품 표시·재무·행사 운영까지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고객 접점에서도 이미 돌아가는 AI가 있다. 이마트·트레이더스 전 점포는 AI 챗봇과 상담사 채팅, 전화 상담을 하나로 묶은 디지털 상담 플랫폼을 운영 중이며, AI 챗봇이 전체 민원의 절반 이상을 처리한다. 계산대에는 AI 카메라가 상품 스캔 누락이나 계산 오류를 실시간 감지하는 시스템이 2026년 4월 말 기준 전국 58개 점포에 923대 운영되고 있다.
가장 구체적인 성과 수치가 나온 건 오히려 이마트 본체가 아니라 계열 편의점인 이마트24다. 2024년 1월 도입한 'AI 상품추천 서비스'는 점포별 판매 데이터를 분석해 특성이 비슷한 점포 10곳을 찾고, 그중 잘 팔리지만 해당 점포엔 아직 없는 상품을 점주에게 추천하는 방식이다. 2023년 8~11월 직영점 17곳 테스트에서 추천 상품의 90%가 완판·재발주됐다. 매일 발생하는 60억 건 이상의 거래 데이터와 8만 개 이상의 상품 데이터를 점포 단위로 재구성했기에 가능했던 결과다.
월마트와 비교하면
정리하면 월마트는 이미 고객용 에이전트(스파키)를 시장에 내놓고, 외부 플랫폼 결제 실험에서 실패까지 겪으며 다음 전략을 조정하는 단계에 있다. 반면 이마트·신세계그룹은 업무용·상담용·계산대용 AI를 현장에 먼저 심어 검증하면서, 고객이 검색부터 결제까지 맡기는 완결형 에이전트는 아직 계획과 파트너 재편 단계에 머물러 있다. 순서는 다르지만 방향은 같다. 다만 이마트는 지금까지, 화려한 고객용 챗봇보다 데이터가 명확하고 성과 검증이 쉬운 좁은 업무부터 자동화해 성공 사례를 쌓는 경로를 택하고 있다.
실무 시사점
- 커머스·UX 전략 담당: "클릭을 줄이면 전환율이 오른다"는 공식이 에이전트 커머스에서는 항상 통하지 않는다. 특히 여러 품목을 한 번에 사는 업종에서는 결제 단계 축소보다 장바구니·배송·혜택의 일관성이 전환율을 좌우한다는 점을 설계 기준에 반영해야 한다
- 데이터·API 담당: 에이전트 경쟁력은 모델 성능이 아니라 재고, 가격, 배송 가능 여부, 멤버십 혜택을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시스템 연결성에서 나온다. 외부 AI 플랫폼과 제휴할 때는 상품 노출 연동뿐 아니라 장바구니·계정·주문 데이터까지 양방향으로 동기화되는 구조인지 먼저 점검할 것
- 외부 플랫폼 제휴 담당: 챗GPT·제미나이 등 외부 AI 플랫폼은 신규 고객을 발견시키는 채널로는 가치가 크지만, 결제·이행·멤버십까지 그대로 넘기면 통제력을 잃는다. '발견은 외부, 거래는 자사 시스템'이라는 하이브리드 원칙을 계약 조건에 명시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 광고·리테일미디어 담당: 월마트 마티 사례처럼, AI 에이전트를 고객용으로만 한정하지 말고 광고주·협력사 응대에도 적용할 만한 영역을 찾아볼 시점이다.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캠페인 세팅·정산 문의부터 시작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 경영기획: 에이전트 도입 성과를 "대화가 얼마나 자연스러운가"로 평가하지 말고 전환율, 평균 주문금액, 재구매율, 상담원 개입률처럼 거래가 실제로 완결됐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관리할 것. 월마트의 즉시결제와 스파키가 같은 시기 정반대 성과를 낸 것도 결국 이 지표들의 차이였다
- AI 전략·기술파트너 담당: 이마트24의 AI 상품추천처럼 데이터가 명확하고 성과 검증이 쉬운 좁은 업무부터 시작해 성공 사례를 쌓는 편이, 처음부터 검색·장바구니·결제를 모두 아우르는 완결형 에이전트를 목표로 잡는 것보다 리스크가 낮다. 신세계그룹이 오픈AI 발표 11일 만에 리플렉션 AI로 파트너를 바꾼 사례에서 보듯, 특정 LLM 업체와의 제휴 자체보다 상품·재고·장바구니·결제·배송을 잇는 자체 운영 기반을 먼저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
결론
월마트의 즉시결제 실험은 실패했지만, 실패의 이유를 정확히 읽으면 오히려 유용한 사례가 된다. 문제는 AI가 부정확해서가 아니라, 결제 버튼 하나만 옮겨오고 그 뒤에 있어야 할 장바구니·멤버십·배송 시스템은 옮겨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같은 기간 자체 통제 아래 있던 스파키가 거래액 150% 성장이라는 정반대 결과를 낸 것이 그 증거다. 에이전트 커머스의 승부처는 결국 AI 모델도, 데이터의 양도 아니다. 고객의 의도를 실제 주문·결제·재고·배송까지 끊김 없이 연결하는 거래 운영체계를 누가 쥐고 있느냐다. 이마트가 고객용 완결형 에이전트보다 바이어 업무·상담·계산대처럼 검증하기 쉬운 영역부터 다지고 있는 것도, 결국 같은 결론에서 출발한 선택으로 봐야 한다.
이 사례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월마트가 실패를 숨기지 않고 구체적인 숫자(3배)로 공개했다는 점이다. 실패를 "AI 추천이 아직 부족해서"라고 뭉뚱그리지 않고 "결제 워크플로가 끊겨서"라고 정확히 짚어냈기 때문에, 곧바로 챗GPT 재설계와 구글 제휴에 같은 원칙을 반영할 수 있었다. 원인 분석의 해상도가 다음 실행의 속도를 결정한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더 눈여겨봐야 할 건 같은 시기 스파키가 낸 성적표다. 거래액 150% 성장, 주문금액 35% 상승이라는 숫자는 "에이전트 커머스가 아직 시기상조"라는 통념을 반박한다. 문제는 에이전트라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에이전트가 어떤 시스템에 연결돼 있느냐였다. 한국 기업들이 자체 AI 쇼핑 어시스턴트를 검토할 때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도 "얼마나 똑똑한 모델을 쓸 것인가"가 아니라 "이 에이전트가 우리 장바구니·멤버십·재고·배송 시스템에 얼마나 깊이 연결될 수 있는가"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마티의 광고화 사례는 국내 유통사들이 놓치기 쉬운 부분이라 짚고 싶다. AI 에이전트 투자를 고객 경험 개선 비용으로만 보는 시각이 여전히 많은데, 월마트는 같은 기술을 광고주 응대에 적용해 리테일미디어 매출 33% 성장이라는 실질적 수익으로 전환했다. 에이전트 전략을 짤 때 고객 접점 하나만 보지 말고, 협력사·광고주·판매자 접점까지 포함한 포트폴리오로 설계해야 투자 대비 성과를 훨씬 빨리 증명할 수 있다.
이마트 사례를 보면서는 조금 다른 평가를 하게 된다. 오픈AI와 MOU를 발표하고 11일 만에 리플렉션 AI로 파트너를 바꾼 것을 두고 "전략이 흔들린다"고 볼 수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반대로 읽는다. 특정 LLM 업체와의 제휴 발표 자체를 성과로 포장하지 않고, 실행 파트너가 맞지 않으면 빠르게 바꿀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진짜 우려되는 지점은 다른 데 있다 — 고객용 완결형 에이전트의 출시 시점과 구체적 지표가 아직 하나도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월마트는 실패한 실험조차 전환율 3배 격차라는 숫자로 공개하는데, 이마트는 아직 성공이든 실패든 고객용 에이전트에 대한 숫자 자체가 없다. 반면 이마트24의 AI 상품추천처럼 범위를 좁힌 영역에서는 90% 완판·재발주라는 꽤 설득력 있는 성과가 이미 나와 있다. 이 대비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 지금 이마트에 필요한 건 "월마트급 쇼핑 에이전트를 언제 내놓을 것인가"라는 조바심이 아니라, 이미 검증된 좁은 성공을 더 많은 업무로 확장하면서 그 과정에서 나온 데이터·연동 인프라를 고객용 에이전트의 기반으로 쌓아가는 것이다. 화려한 발표보다 이 축적 속도가 실제 격차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