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인·테무 잡으려던 EU 관세, 오히려 두 회사를 키웠다
Overview
EU가 7월 1일부터 150유로 미만 소포에 품목당 3유로 관세를 부과하며 쉬인·테무·알리익스프레스를 정조준했다. 그런데 두 회사는 이미 유럽 현지 창고를 선점해 관세를 우회하고 있다. 규제가 겨눈 것은 거대 플랫폼이었지만, 실제로 발이 묶인 건 창고를 지을 여력이 없는 중소 셀러들이다.
7월 1일 EU가 150유로 미만 전자상거래 소포에 대한 관세 면제를 폐지했다. 품목 분류(HS코드)마다 3유로씩 고정 관세를 매기는 방식이라, 실크 블라우스 1벌과 울 블라우스 2벌이 든 소포라면 총 6유로가 붙는다. 겨냥한 대상은 명확했다 — 2024년 기준 EU로 들어온 소액 소포 46억 건 중 91%가 중국발이었고, 그 물량의 대부분을 쉬인·테무·알리익스프레스가 만들어냈다. 그런데 이 관세가 시행된 지 열흘, 정작 두 회사의 주가나 물량에는 별다른 흔들림이 감지되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 관세가 발효되기 전에 이미 우회로를 깔아뒀기 때문이다.

무엇이 바뀌었나 — 3유로의 구조
이번 조치는 2028년 7월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브리지 관세다. 그 이후엔 상품 카테고리별로 0~17%의 정식 세율이 적용되는 EU 관세 개편이 예정돼 있어, 지금의 3유로는 최종 형태가 아니라 과도기 장치에 가깝다. 그럼에도 당장의 파급력은 작지 않다. 10~20유로대 초저가 상품은 관세 하나로 마진이 통째로 사라지는 구조이고, 여기에 이탈리아·프랑스처럼 자체적으로 소포당 2~5유로의 추가 수수료를 얹는 국가도 있어 체감 부담은 더 크다. EU 재무장관들이 이 안에 합의한 명분도 분명했다 — 자국 소상공인이 부가세·관세를 정상적으로 내는 동안, 중국 C커머스는 소액 면세 구조를 이용해 사실상 무관세로 유럽 시장을 잠식해왔다는 것이다.
핵심 인사이트 — 규제가 발효되기 전에 이미 끝난 게임
여기까지는 예상 가능한 흐름이다. 진짜 흥미로운 지점은 규제가 겨눈 대상이 정작 이 규제로 별로 다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쉬인은 이미 지난해 12월 폴란드 브로츠와프 인근에 74만㎡ 규모의 물류 허브를 열었고, 올해 5월에는 영국 미들랜즈 캐녹에 3만7,600평 규모 창고를 추가했다. 5년간 2억5,000만 유로를 유럽 물류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의 일부다. 테무는 한발 더 나아가 EU 역내에 자체 운영 창고 10곳을 구축해, 유럽向 주문의 80%를 역내 재고로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 구조가 관세를 피해가는 방식은 간단하다. 중국에서 개별 소비자에게 직접 발송되는 소포는 건마다(정확히는 품목마다) 관세 대상이 되지만, 대량으로 유럽 창고에 입고되는 상업용 벌크 화물은 통관을 한 번만 거치면 된다. 즉 "중국 → EU 창고" 구간에서 관세를 한 번 정산하고 나면, "EU 창고 → 소비자" 구간은 역내 배송이라 추가 관세가 붙지 않는다. 실제로 두 플랫폼은 이제 상품 페이지에 "EU 창고 발송" 라벨을 붙여, 소비자가 관세 없는 상품을 골라 살 수 있게 안내하고 있다. 규제를 피하는 정도가 아니라, 규제를 소비자에게 보이는 마케팅 요소로 바꿔버린 셈이다.
여기서 진짜 아이러니가 드러난다. 이 관세는 "중국 C커머스의 무임승차를 막겠다"는 취지로 설계됐지만, 정작 그 무임승차를 이미 끝낸 건 쉬인·테무 자신들이다. 두 회사는 규제 시행 시점을 앞두고 유럽 물류 인프라에 수억 유로를 선제 투자할 여력이 있었고, 그 결과 관세는 이들의 매출 구조에 큰 흠집을 내지 못한 채 발효됐다. 반면 이런 창고를 지을 자본이 없는 중소 규모 크로스보더 셀러 — 중국 개인 셀러는 물론 한국의 소규모 D2C 셀러까지 — 는 여전히 중국(혹은 한국)에서 EU로 직접 발송하는 구조에 머물러 있고, 이들에게는 3유로 관세가 고스란히 마진을 갉아먹는 실질적 타격으로 돌아간다. 규제가 겨눈 것은 거대 플랫폼이었는데, 실제로 걸려 넘어진 건 그 플랫폼을 흉내 내려던 더 작은 경쟁자들이라는 뒤바뀐 결과다.
비즈니스 임팩트 — 그리고 한국 셀러의 자리
이 구조 변화는 한국 이커머스 생태계에도 두 갈래로 영향을 미친다.
첫째, 유럽 진입로가 좁아진 알리·테무·쉬인이 상대적으로 만만한 한국 시장 공략에 더 힘을 쏟을 가능성이다. 이미 국내 저가 생활용품·패션 카테고리에서 이들의 존재감이 커진 상황에서, EU 규제로 밀려난 물량과 마케팅 자원이 한국으로 재배치될 유인이 생긴 것이다.
둘째, 국내 K-뷰티 소규모 브랜드의 EU 크로스보더 판매가 직접 타격권에 든다. 10유로 이하의 마스크팩·립틴트류 저가 뷰티 상품은 3유로 관세가 붙는 순간 마진의 30~50%가 증발하는 구조다. 문제는 이 브랜드들 대부분이 쉬인·테무처럼 자체 EU 물류창고를 지을 규모가 아니라는 데 있다 — 즉 대형 C커머스 플랫폼은 우회로를 뚫었는데, 비슷한 처지의 한국 중소 셀러는 그 우회로에 올라탈 자본이 없는 셈이다. 유럽 현지 창고·풀필먼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3자 물류(3PL)나 플랫폼과의 제휴가, 이제 선택이 아니라 EU 진입의 전제조건에 가까워지고 있다.
실무 시사점
- 크로스보더 이커머스 담당자: 중국에서 직접 발송하는 구조는 이제 원가 경쟁력을 잃는다. EU 역내 풀필먼트 파트너(3PL) 확보 여부가 유럽 시장 진입의 1차 관문이 됐다는 전제로 물류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 K-뷰티·저가 뷰티 브랜드: 10유로 이하 초저가 상품 라인은 EU向 판매 구조 자체를 재검토할 시점이다. 단품 판매보다 묶음 구성으로 품목당 관세 부담을 상품 단가에 분산시키는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 국내 유통·이커머스 전략 담당자: 알리·테무·쉬인의 유럽 물량 재배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들의 국내 마케팅·프로모션 강도 변화를 모니터링해야 한다. 특히 저가 생활용품·패션 카테고리에서 경쟁 압력이 단기간에 커질 수 있다
- 정책·산업 담당자: EU 사례는 "면세 한도 폐지"가 곧바로 거대 플랫폼의 시장 지배력 약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사한 규제를 국내에 도입할 경우, 자본력이 있는 대형 플랫폼과 그렇지 못한 중소 셀러 간 격차를 더 벌리지 않도록 병행 지원책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결론
EU의 3유로 관세는 헤드라인만 보면 "중국 이커머스 거인들에 대한 견제"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뒤집힌다. 쉬인과 테무는 규제가 시행되기도 전에 유럽 현지 창고망을 완성해 우회로를 뚫었고, 정작 이 관세로 발이 묶인 건 그런 인프라를 지을 자본이 없는 더 작은 셀러들이다. 규제는 종종 의도한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을 뒤쫓던 경쟁자를 먼저 걸러낸다 — 이번 EU 관세가 정확히 그 사례이며, 그 여파는 유럽만이 아니라 한국의 크로스보더 생태계로도 이어지고 있다.
현장에서 이런 규제 발표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하나다 — 법이 정해지는 순간과 그 법이 실제로 작동하는 순간 사이엔 항상 시차가 있고, 그 시차를 메울 자본이 있는 쪽이 이긴다는 것이다. 쉬인·테무는 이미 작년부터 유럽 창고에 수억 유로를 박아뒀다. EU가 관세를 손보는 동안 이들은 물류를 손봐놨다.
정작 걱정되는 건 한국 중소 뷰티 셀러들이다. 마스크팩 한 장에 3유로 관세가 붙으면 그 장사는 산수가 안 맞는다. 그런데 이들에게 "유럽에 자체 창고를 지어라"는 조언은 현실성이 없다. 결국 답은 3PL이나 공동 풀필먼트를 통한 규모의 경제뿐인데, 이걸 누가 먼저 판을 깔아주느냐가 다음 국면의 승부처가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 이 관세로 숨통이 트일 줄 알았던 유럽 현지 브랜드들도 마냥 웃을 처지는 아니다. 유럽 창고를 갖춘 쉬인·테무는 오히려 "관세 없는 상품"이라는 딱지를 마케팅 무기로 쓰기 시작했다. 견제하려던 규제가 상대의 무기가 되는 이 역설을, 비슷한 규제를 검토하는 다른 시장들도 눈여겨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