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의 명품화, 산토리가 파리공항에서 던진 신호
Overview
하우스 오브 산토리가 파리 샤를드골공항에 첫 팝업과 첫 상설 매장을 동시에 열었다. 그런데 싱가포르 창이공항, 런던 히드로, 암스테르담 스키폴까지 — 위스키 브랜드가 향수·패션의 체험형 매장 문법을 빌려오는 실험은 이미 여러 공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면세점 주류 코너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정해져 있다 — 1+1 스티커가 붙은 대형 보틀이 진열대에 빼곡히 쌓인 창고형 매대. 그런데 지난 6월 30일 파리 샤를드골공항에 문을 연 하우스 오브 산토리의 새 매장은 이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위스키를 담은 보자기를 풀어보이고, 시음 테이블에서 페어링 스토리를 들려주는 이 공간은 그동안 향수·패션 브랜드만 쓰던 문법을 주류 카테고리로 그대로 옮겨온 결과물이다.
산토리가 던진 신호 — 파리공항의 팝업과 상설 매장
하우스 오브 산토리는 라가르데르 트래블리테일, 엑스타임 면세점과 함께 파리 샤를드골공항 제1터미널에 첫 팝업 매장을, 제2터미널에는 첫 상설 브랜드 공간을 동시에 열었다. 제1터미널 팝업은 가로 5m·세로 3m 규모의 작은 공간이지만 히비키·야마자키·하쿠슈 세 라인업을 축으로 세 개 존으로 나뉘어 있다. 히비키 21년, 야마자키 18년, 하쿠슈 18년 같은 프레스티지 라인을 앞세우고, 일본의 전통 포장 방식인 후로시키(보자기) 시연을 통해 "선물하는 방법" 자체를 체험 콘텐츠로 만들었다.

제2터미널의 상설 공간은 공항에서 가장 트래픽이 높은 매장 중 하나인 LSM4 매장 안에 자리 잡았다. 세 개 존으로 구성돼 발견부터 구매까지 동선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도록 설계됐고, 조명 라이트박스로 신제품과 한정판을 강조한다. 팝업이 화제성을 만드는 역할이라면, 상설 공간은 그 화제성을 실제 매출로 전환시키는 장치인 셈이다.

위스키가 향수·패션의 문법을 빌려오다
이 매장이 흥미로운 이유는 구성 방식이 아니라 '누가 이 방식을 쓰기 시작했는가'에 있다. 복층 매장을 짓고 브랜드가 직접 공간·동선·스토리텔링을 설계하는 방식은 원래 루이비통·샤넬 같은 명품 패션·뷰티 브랜드의 전유물이었다. 이 문법 자체는 뷰티에서는 이미 검증됐다. 흥미로운 지점은 따로 있다 — 주류가 이 문법을 빌려온 것이 파리공항이 처음도, 유일한 사례도 아니라는 것이다. 창이·히드로·스키폴 등 세계 주요 공항에서 위스키 브랜드들은 이미 몇 년째 비슷한 실험을 벌이고 있었다.
면세 주류의 오랜 경쟁 축은 가격이었다. 리터병, 2병 묶음 할인, 기내 반입 한도 안에서 최대한 많이 담아가게 만드는 구조다. 그런데 이 경쟁 축은 로컬 대형마트나 이커머스의 상시 할인과 점점 차별화가 어려워지고 있다. 산토리가 택한 답은 정반대다 — 가격이 아니라 '이 공간에서만 가능한 경험'으로 승부를 옮기는 것이다.
프레스티지 라인업을 앞세우고 시음·페어링·기프팅 서비스를 붙이면, 소비자는 더 이상 "면세라서 싸게 사는" 것이 아니라 "공항에서만 만날 수 있는 브랜드 경험을 사는" 것이 된다. 이 전환이 중요한 이유는 마진 구조 때문이다. 가격 경쟁은 오퍼레이터와 브랜드 양쪽의 마진을 갉아먹지만, 경험 기반 프리미엄 라인은 마진율을 지키면서도 객단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
이미 여러 공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이다
이 흐름이 파리공항 하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은, 조금만 살펴봐도 바로 드러난다.
싱가포르 창이공항 — 롯데면세점. 하우스 오브 산토리는 2024년 3월, 파리공항 매장보다 2년 이상 앞서 롯데면세점 창이공항 제3터미널에 13.5㎡ 규모의 shop-in-shop을 이미 열었다. 일본 전통 목재 이음 기법인 기구미(組み) 격자와 원형 창 마루마도(丸窓)를 본뜬 디스플레이를 쓰고, 교토 기모노 하우스 치소와 협업한 '야마자키 & 하쿠슈 코게이 컬렉션'을 단독 판매했다. 산토리만이 아니다. 롯데면세점 창이공항점은 지난해에만 9개의 위스키 팝업스토어를 유치해 맥캘란·조니워커 한정판을 세계 최초로 선보였고, 2025년 12월엔 맥캘란이 19㎡ shop-in-shop을, 2025년 9월엔 더 달모어가 한 달간 단독 팝업을 열었다. 올해는 모엣 헤네시 트래블리테일과 '불의 말의 해'를 콘셉트로 한 헤네시 팝업도 운영 중이다. 로봇 바텐더, 스마트 디스펜서, AI 와인 추천까지 기술 접목도 이어지고 있고, 2터미널 듀플렉스 매장의 초고가 위스키존(달모어 43년 등)은 'WOW' 행사 하나에서만 약 10억원의 매출을 냈다.

런던 히드로 — 월드듀티프리. 독립 스카치 위스키 브랜드 페이블(Fable)은 2024년 5월 히드로 제5터미널에 월드듀티프리와 함께 팝업 전시 공간을 열었다. '고스트 파이퍼 오브 클랜야드 베이 컬렉션'을 주제로 아티스트 휴고 쿠에야르의 삽화 작품을 전시하고, 세계 위스키의 날(5월 18일)엔 작가 사인회까지 진행했다. 판매가 아니라 "몰입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는 게 담당자의 설명이다. 이 캠페인은 개트윅·글래스고·에딘버러·애버딘 공항까지 디지털·광고 형태로 확장됐다.

암스테르담 스키폴 — 스키폴 에어포트 리테일(SAR). 스키폴은 라운지3의 'Finest Spirits & Cigars' 매장을 통해 폐쇄 증류소 병입과 희귀 익스프레션 등 25유로 미만 상품이 없는 초프리미엄 위스키 라인업을 구축하며 유럽 내 희귀 싱글몰트의 성지로 자리 잡았다. 라운지1에는 라가르데르 트래블리테일과 함께 와인·스피릿을 포함한 1,500㎡ 규모의 신규 플래그십 매장 '투데이 듀티프리'도 열었다.

즉 산토리가 파리공항에 연 것은 새로운 실험이 아니다. 창이·히드로·스키폴이 이미 각자의 방식으로 검증해온 모델이 파리에 상륙한 것에 가깝다.
실무 시사점
- 국내 면세 오퍼레이터(롯데, 신라, 신세계, 현대): 롯데면세점(창이공항)과 현대면세점(인천공항)은 이미 위스키 shop-in-shop·팝업 운영 노하우를 갖고 있다. 관건은 창이공항 수준의 멀티 브랜드·멀티 팝업 밀도를 국내 공항에서도 재현하는 속도다
- 주류 브랜드 담당자: 산토리·맥캘란·페이블·헤네시 사례처럼 한 브랜드가 여러 공항에서 각기 다른 콘셉트(shop-in-shop, 전시형 팝업, 초프리미엄 코너)로 동시에 실험하는 멀티 로케이션 전략이 이미 표준이 되고 있다. 시장별로 다른 체험 포맷을 설계할 여지가 크다
- 공항 상업시설 기획팀: 스키폴처럼 '가격 하한선을 두는' 초프리미엄 전용 코너나, 히드로처럼 판매보다 브랜드 전시에 집중하는 팝업 등 공항별로 차별화된 포지셔닝이 가능하다는 점을 참고할 만하다
- MD 담당자: 팝업(화제성)·shop-in-shop(전환)·초고가 존(이벤트성 매출)을 층위별로 분리해 운영하는 창이공항형 3단 구조는 카테고리별 KPI를 다르게 설계할 때 참고할 만한 모델이다
결론
산토리가 파리공항에 연 것은 매장 하나가 아니라, 이미 여러 대륙에서 동시에 진행 중인 흐름의 최신 사례다. 향수·패션이 먼저 증명한 '브랜드가 공간을 설계해 경험을 파는' 방식은 뷰티에서는 이미 검증됐고, 주류 카테고리에서도 창이·히드로·스키폴·인천을 가로지르며 이미 여러 브랜드·오퍼레이터가 실험을 거듭해왔다. 다음 질문은 하나다 — 이미 세계 곳곳에서 검증된 이 플레이북을, 국내 시장에는 어떤 밀도와 속도로 들여올 것인가.
뷰티에서는 이미 검증됐다. 그리고 주류에서도 이미 검증되고 있다 — 그것도 한 공항이 아니라 창이·히드로·스키폴·인천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산토리·맥캘란·페이블·헤네시가 각기 다른 공항에서 나란히 실험 중이라는 사실은 이게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자리 잡은 카테고리 전략이라는 신호다.
이제 질문은 '해볼 것인가'가 아니라 '이미 세계 여러 공항에서 확보된 노하우를 어떤 조합으로 국내에 들여올 것인가'다. 얼마 전 철수한 신라면세점과 신세계 면세점 인천공항 주류매장이 보여주듯 국내에도 이미 토대는 있다. 프레스티지 위스키·코냑은 스토리텔링 여지가 뷰티 못지않게 크고, 국내 소비자의 프리미엄 주류 관심도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창이·히드로 사례를 함께 벤치마킹해 국내 공항 면세점에서도 팝업+shop-in-shop 투트랙 모델을 브랜드별로 시범 운영해볼 시점이라고 본다.